중국 기행

'야생화 천국' 北灵山에서 여름을 송별하다

니하오92 2012. 8. 2. 08:42

'야생화 천국' 北灵山에서 여름을 송별하다
[2012-07-31, 21:26:27] 온바오   조회수:372
 
베이징의 여름이 바뀌고 있다.
비가 많이 오고 있다. 주말이면 비소식이요, 우산을 챙기지 않으면 불안한 나날들..
지금껏 베이징의 장점이자 단점이었던 강우량이 적어서 사막화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지진과 태풍, 장마 피해가 없다던 그 모습이 최근 바뀐 듯 하다. 특히 금년은 비소식이 우리를 놀래게 하고 있다.

잘해봐야 일년 강우량이 600미리 정도였다고 하는데, 하루에 쏟아진 폭우가 베이징 일부 지역에서는 400미리가 넘게 왔다고 하니, 가히 대재앙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테다. 아마 61년만의 대폭우였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 걸맞게 사상자가 37명, 재산피해가 1조원 이상이라고 발표됐다. 그러나 일부 시민은 그보다는 피해가 많은 듯, 무엇인가 불만이 많은 듯 하다. 어찌됐든 필자도 베이징 생활 13년 동안, 이런 폭우는 처음이었다. 매년 좀 나눠서 비가 조금씩 더 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비가 그치고 나니 7월의 열대야가 매섭다.
방안에 가만 있자니 땀이 줄줄 흐르고, 에어컨을 켜자니 애매하게 온몸이 으슬으슬해 기분이 불편하다. 책을 펼치나 온몸이 찌뿌둥하여 책장을 덮고, TV에 눈을 팔고 있자니 머리 속 한 곁이 개운치 못하다. 차라리 열심히 땀 흘리고 시원한 냉수와 한잔의 냉맥주라도 들이킨다면 적극적인 여름 피서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 좋은 방법이 생각났다. 누군가 설파한 "일상생활에서 부딪히게 되는 번뇌는 자연을 따르지 못하여 생기는 미혹의 병이다"라는 절구에 따라 산으로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토요일은 최근 결성되었다는 베이징 한국성당팀이 운영하는 산악회를 따라 "베이징의 고산, 야생화의 천국"이라는 "베이링산(北灵山)" 으로 향했다.

 
北灵山 의 여름은 저만치 가고.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주섬주섬 여장을 챙기고 출발지인 왕징으로 향했다. 아침부터 잔뜩 흐린 날씨에 애매한 안개, 일기예보대로 뭔가 비라도 내릴 것 같은 날씨다. "오려면 오래지" 온몸에 비 젖고 나면 거기서 거기다.

성당 팀들은 28명이 출발이다. 다들 금방 쏟아질 것 같은 비 소식에도 별로 감흥이 없는 표정이다. “지난주 토요일의 폭우만큼이야 오겠어?”라는 바램과 “비가 오면 그냥 젖으면 되지”라는 편안한 마음이다.

베이징을 출발해 오전 10시 정도가 되니, 베이링산의 입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지금껏 조용하던 날씨가 그곳에 도착하니, 비가 쏟아지고 있다. 막상 비가 오니 마음들이 복잡하다. 준비한 우의도 여의치 않고, 젖은 후의 불편함이 왠지 낯설고... 그래도 너도나도 우의를 현지에서 사서 챙겨입고 그냥 ‘고고싱’이다.

베이링산의 산보 출발지점은 거의 산 정상 근방이다. 앞으로 걸어야 할 긴 여정을 감안하여 산정상 근방까지 차로 운송한 탓이다. 그곳에는 비가 없다. 오히려 뭉게구름 사이로 해님이 언듯언듯 내 비추고 있다. 모르긴 해도 성당 팀 중 어느 분은 본인의 기도 덕분이라고 할 것 같은 예감이다.

이곳 출발지점에서 걷기 시작하여 황초령을 지나 최종 하산지로 간다면 무려 18킬로미터, 약 8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물론 일부 팀은 1/3 지점에서 귀환 할 수 도 있다. 그런데 28명중 18명은 전 코스를 종주하였다.

베이링산의 초기 산보 분위기는 그야말로 안락함 그 자체다.
해발 2천 미터 고지에서 불어오는 가을바람 같은 시원한 산바람, 산등성이에 펼쳐진 초원과 편안한 오솔길, 저 멀리 군락을 이룬 소나무와 낙엽 관목림들의 조화로움, 길목주변에서 쉴새 없이 들려오는 풀벌레소리, 그리고 이름도 모르는 산새들의 노래 소리와 근처 포유류들의 생존 흔적들...

그러나 우리의 눈을 가장 즐겁게 하는 것은 초원 위에 지천으로 핀 야생화의 꽃 잔치다. 지금은 조금 제철이 지난 듯 하지만 아직도 그 곳에는 온천지가 꽃이다. 특히 국가 차원에서 중점적으로 보호하고 있다는 금매초, 황금초 등이 지천으로 피어있으며,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구절초, 패랭이, 노루발, 엉겅퀴, 쑥부쟁이, 솔체꽃 등등.. 파랗고, 노랗고, 빨간 형형색색의 자연의 색깔이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하고 있다.

우리가 걷는 산보 길마저도 너무나도 찰진 옥토길이다. 그 길은 맨발로 걸어야만 산의 기운이 온몸으로 전달 될 것 같은 곳이다.

베이링산 고산의 산보 길과 야생화 단지는 지금껏 가본 백두산의 서파 지역과 내몽고의 적봉 지역의 야생화 단지와 흡사하며, 해당지역의 공통점은 해발 1500미터 이상으로서 겨울에는 춥고 황량하나, 6월 초순부터 피기 시작한 푸른 초원 위에 야생화가 8월 중순까지 지속된다는 점이다.

 
산길을 걷노라면 아름다운 경치에만 몰입 할 수는 없다. 산길을 걸으면서 산행 동료와 이런저런 인생의 얘기를 두런두런 나누는 것도 재미다.

너무나 기분 좋은 주변의 경치에 반하여 누군가 읊은 시 구절을 되 뇌여 본다.

" 소나무 우거진 시냇가를 지팡이 짚고 홀로 가노라니,
서있는 곳에 구름이 누더기 헤어진 옷처럼 피어 오르네.

대숲 우거진 창가에 책을 베고 누우니,
차가운 달빛이 담요를 적시네.."

몸은 세파에 물들어 있지만, 인생의 달관자가 즐길법한 고고한 여름 피서가 부러웠는데 오늘의 산행은 스스로가 2천 미터 고지의 선계에 몸담고 있는 듯한 기쁨에 잠겨있다.

그리고 전국시대의 유명한 4공자중의 하나인 맹상군의 후일담 얘기가 화두에 오른다.

한때 3천명의 식객을 거느리고 보살폈던 맹상군이 권력을 잃고 식객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맹상군은 세상 인심에 한탄하였다고 한다. 그러자 잔류한 식객 중 풍헌이란 사람이 이렇게 얘기한다.

" 사람이 태어나서 죽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며, 아침 일찍 시장 판이 북적이다가 오전이 못되어서 설렁하게 변하는 것은 살 물건이 없기 때문이지 시장이 싫어서떠나는게 아니며, 관 장사가 누군가의 부고소식을 들으면 기뻐하는 것은 마음씨가 고약해서가 아니라 관을 팔 수 있기 때문이며, 수레를 짜는 공인이 누군가의 승진소식을 들으면 기뻐하는 것은 마음씨가 선량해서가 아니라, 새로 수레를 팔 수 있는 기대 때문이다" 라고 설파하였다.

그렇기도 하고 아니듯 하기도 하고, 그냥 산에서 이런저런 생각을 곱씹어 볼 뿐이다.

이렇게 계곡을 넘고, 봉우리를 지나 계곡을 돌고 돌아서 2200미터 고지인 황초령에 도달했다. 시간은 오후 4시30분이 넘었다. 그런데 물이 부족하다. 참 이제 보니 링산은 큰 문제가 있다. 산은 크고 꽃은 무르익었으나, 계곡에 흐르는 물 한줄기가 없다. 너무 크면서 인색하다. 다 좋지만은 않은 듯 하다.

목은 마르고 약 2시간을 걸어야 물이 나온다고 한다.
주변에 물이 없다고 생각하면 걷잡을 수없이 더욱 그리울 뿐이다.

그래서 내리막길은 물을 위하여 단숨에 뛰어 내려왔다. 하산하여 시원한 물 한잔 마시고 나니 벌써 오후 6시 반이 넘었다. 그리고 베이징시내에 도착하니 10시가 다되어 가는데 성당 팀의 김동진고문님 배려로 푸짐한 저녁상이 기다리고 있다. 시원한 맥주 한잔, 그리고 오늘 하루의 여정에 대해 주고 받는 따뜻한 담소에 벌써 11시가 다가온다.

자, 괜찮은 하루가 끝났다. 오늘 하루 몸은 피곤하여 정강이가 욱신거리지만, 시내에서는 한창때인 여름이 베이링산에서는 저만치 가고 있는 뒷모습을 보는 기분으로 대 만족이다.

곧 계절이 바뀔 것이다. (jgkim1226@hanmail.net)